책과의 첫 만남
서점의 한 매대에서 이 책과 만났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동화책을 사고 읽어왔지만 한땀한땀 만들어낸 그들의 작품을 마주할 때 짜릿한 전율을 느끼는 건 아주 가끔입니다. 이 책도 처음 집어들었을 때는 그냥 생쥐인형 캐릭터가 주인공인 책인가보다 했어요. 동화책에서는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이 아주아주 흔한 일이잖아요. 게다가 생쥐는 우리(저와 제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주인공에 속하지도 않았고요. 어떤 이들은 디즈니사의 미키마우스를 좋아하잖아요. 저희는 오히려 도널드덕을 더 좋아하는 편이랍니다. 미키마우스가 온전한 주인공이라고 해도요. 그런 저희가 이 책을 왜 들춰보게 되었던 건지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아요. 기억은 온전하지가 않은거라 기록을 최대한 많이 해두려고 하는데, 그마저도 일상에 치이다 보면 쉽지가 않더라고요. 이 책은 산 지도 오래되었으니 그 때의 기억이나 기록이 남아있을리 없지요. 하지만 그 수많은 책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책인 것 만은 확실합니다.
책을 몇 장만 넘겨보신다면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게 되실 거에요. 이 책은 제목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작가가 3년에 걸쳐 재활용품만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작가인 카리나 샤프만이 만들어낸 이 생쥐들의 세상은 아파트의 형태로 구현되었습니다. 생쥐 아파트는 두꺼운 종이 상자와 종이 반죽으로 만들었는데, 방이 100개가 넘고 복도와 야외 공간도 엄청나지요, 그녀는 이 아파트의 실내를 꾸미기 위해서 50년대, 60년대, 70년대 쓰던 천 조각들은 물론 여러 가지 모양의 재활용품들을 사용했습니다.
작가 소개
카리나 샤프만
1960년 네덜란드 라이덴시에서 태어났으며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랍니다.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6년간 암스테르담 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교육문제, 인신매매문제, 여성 인권문제 등에 공헌했습니다. 이 활동을 인정받아 '해리엇 프리저링상'을 수상합니다.
2004년 <엄마 없는 아이'Motherless'>를 비롯해 교육과 양육에 관한 책 3권을 출간했고, 일간지와 잡지에 글을 써 왔습니다. 정계 은퇴 후에 예술 작품 제작에 몰두하던 그녀는 <꼬마 생쥐 샘과 줄리아>의 배경이 되는 인형의 집 '생쥐 아파트'를 정교하게 만듭니다. 이 책으로 네덜란드 최고 권위 아동그림문학상 실버브러시상을 수상합니다.
높이 3미터, 너비 2미터, 100개가 넘는 방, 복도, 정원 등의 풍성한 볼거리를 섬세하게 제작한 이 작품은 암스테르담 공공도서관에 영구 보존 전시되고 있습니다.
꼬마 생쥐 샘과 줄리아
우리 집에 놀러 올래?
내용 소개
<꼬마 생쥐 샘과 줄리아, 우리 집에 놀러 올래?> 는 총 19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동화책입니다. 100편이 넘는 이야기 중에 고민끝에 엄선된 이야기들이라고 하더군요. 아파트의 규모를 한 번이라도 보신 분들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 에피소드일 것입니다.
표지를 넘기는 순간 나오는 것은 탄성입니다. 그 곳에서 생쥐들은 각자의 삶을 부지런히 살고 있어요. 비틀즈 포스터가 붙은 집에서 화분을 가꾸거나, 사다리를 타지 않으면 손이 닿지 않을만큼 높은 책장 가득 책을 꽂아두고 정리하는 모습, 천으로 무언가를 만드느라 바닥에는 원단 조각들이 지저분하게 놓여있고 테이블에서는 뭔가를 열심히 만드는 데 열중한 생쥐. 요리사의 집인지 하늘색 키친에서는 두 명의 생쥐가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분주합니다. 벽지와 바닥재는 물론 장식된 소품 하나하나 디테일이 살아있어 천천히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요.
줄리아는 뒷동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샘은 앞동 한가운데에서 아빠, 엄마, 형제자매들은 물론,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숙모, 고모, 이모들에 삼촌까지 많은 식구들과 함께 살아요. 둘은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뭐든 함께 나눠 가지는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 친구입니다. 진짜로 줄이 4개인 바이올린을 켜는 음악가. 쌍둥이의 기저귀를 가는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하기스와 팸퍼스. 샘의 사촌 여동생 생일파티 에피소드에 걸려있는 생쥐의 그림들, 소피방 탁자에 놓여있는 안네의 일기까지. 하나하나 열거하면 끝이 없는 자랑입니다. 이 동화책에 대해서요.
샘과 줄리아는 일상을 놀이처럼 이웃과 가족들에게서 사랑과 예의를 배웁니다. 그와 함께하는 우리 아이들도 샘과 줄리아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지요. 따뜻한 일상에서 서로를 통한 배움. 이것이 공동체로서 인간인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것 아닐까요. 아이들은 동화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런 점을 익히게 되고요.
감상
엄마와 단둘이서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낸 작가는 세탁기도 TV도 없는 줄리아의 집을 만들 때, 자신이 살던 집을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고물장수 에피소드 역시 폐지를 주워서 내다팔던 어린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생쥐가 나오는 동화책 한 권과 종잇조각들을 모아 만든 장난감 뿐인 시절이었지만 꿈과 희망이 있어서 행복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같은 옷을 입거나 같은 직업을 가진 생쥐는 하나도 없는 이 집을 3년 동안 만들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작가는 항상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이러한 장기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동화책이라 불리는 이 예술작품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요.
어린 시절의 불우함을 사랑으로 극복한 작가에게서 그 어떤 그늘도 찾아볼 수 없었어요. 사진을 보면 그저 행복한 얼굴입니다. 작가님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그것이 그대로 이 녀석들에게 반영되었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하나 모두 만들어낸 동화책을 대할 때 이제는 좀 더 무거운 마음을 가질 것 같아요. 마냥 오래 걸리겠거니 생각했던 저와는 다른 제가 되었으니까요. 이러한 작품을 만들기까지 작가님들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할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을 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만들어 주셔서. 우리가 이 생쥐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셔서요.
어린이들은 상상의 세계를 마음껏 펼치게 될 것이고, 어른들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는 동화책. 그리고 재활용품의 무궁무진한 변신을 보여준 아름다운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아이들이 동화책을 보면서 나도 만들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분명히 하게 될 거에요. 어른인 저도 따라 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작가님처럼 엄청난 작품에 도전을 못하겠지만요.